Fritz Wunderlich
https://www.youtube.com/watch?v=p6zTlze74Sk&a
Robert Schumann(독일, 1810~1856)
Heinlich Heine(독일, 1797~1856)
Im wunderschönen Monat Mai,
Als alle Knospen sprangen,
Da ist in meinem Herzen
Die Liebe aufgegangen.
아름다운 달 오월에
사방에서 꽃망울이 터져나오고
내 가슴 속엔
사랑이 부풀어올랐네
Im wunderschönen Monat Mai,
Als alle Vögel sangen,
Da hab’ich ihr gestanden
Mein Sehnen und Verlangen.
아름다운 달 오월에
쉴새없이 새들은 지저귀고
난 그녀에게 고백했네
내 그리움과 갈망을
라미레미 번역
로베르트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 중 첫곡입니다. 사랑이 처음 피어나는 순간의 저리도록 떨리는 기쁨과 일렁임, 그리고 알 수 없는 슬픔으로 먹먹한 감동을 줍니다. 왜 사랑을 시작하는데 이리도 아픈걸까요? 결국 깨어진 사랑이어서일까요? 아직 뒤의 노래들을 보지 못해서 알지 못합니다.
<시인의 사랑>은 로베르트 슈만이 하이네의 <서정적 간주곡>에서 16편의 시를 뽑아 1840년 클라라 비크와 결혼하기 직전에 작곡한 가곡집입니다. 오랫동안 장인이자 자신의 스승인 프리드리히 비크의 반대로 결혼을 못 하다가 드디어 결혼하게 된 1840년에 그는 무려 200곡이 넘는 가곡들을 지었고, 그래서 1840년을 슈만의 ‘가곡의 해’라고 부릅니다.
<클라라 평전>을 보면 로베르트 슈만은 어머니의 만류로 하고 싶은 음악을 못하고 법대에 갔다가 결국 늦은 나이에 당대 제일의 음악교사인 프리드리히 비크 문하로 들어가 피아노를 배우게 됩니다. 이때 비크의 딸인 클라라는 어린 나이에 이미 놀라운 테크닉과 음악성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자기 자식을 모차르트 같은 피아노 신동으로 만들려고 한 비크가 결국 성공한거죠. 사이좋게 교류하던 그들은 클라라가 사춘기가 되면서 연인으로 발전하고 당연히 비크는 결사반대를 합니다.
그래도 클라라가 고집을 꺾지 않자 네가 대단한 피아니스트로 평가받는게 단지 네가 잘나서인줄 아느냐, 그렇다면 네가 혼자 해봐라 하고 나와서 결국 클라라는 십대의 어린 나이에 혼자서 연주여행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요즘 생각하는 투어와는 많이 달라서 연주회장도 날짜도 아무것도 정해져있지 않은 상태로 유력자 한명에게 보내는 추천서 한 장만을 들고 며칠씩 마차를 타고 모르는 도시에 가서 연주를 기획 실행해야하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클라라는 그것을 해냅니다. 그리고 스무살이 넘어 법적으로 성인이 되자 드디어 법의 힘을 빌어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비크는 결국 체념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때 로베르트가 클라라에서 바친 결혼 선물이 <은매화 Myrten> 가곡집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낭만적인 결혼 선물이네요. 서로를 향한 넘치는 사랑과 음악과 시로 맺어진 부부였습니다. 당시 로베르트가 수많은 가곡을 썼는데 이때 클라라는 같이 어떤 시로 곡을 쓸지 늘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 사이였습니다. 그 외에도 로베르트 슈만의 작품들에 어떤 식으로 클라라 비크의 의견들이 들어갔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클라라는 남편의 의견을 절대시했고 결혼초에는 남편에게서 작곡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서로를 성장시키는, 아마도 완벽한 부부라고 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유명한 피아니스트 비크의 남편으로 알려져있던 슈만은 점점 훌륭한 작곡가가 되어갔지만 클라라 비크는 남편과 집안을 보살피고 아이를 낳아키우는 일로 계속 소모가 되면서 결국 작곡을 포기합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과 커리어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려고 해도 여자의 의무가 늘 가로막았고 작곡하는 남편을 위해 피아노 연습도 양보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남편이 결국 정신병으로 무너지고, 많은 자식들을 돌보고 집안을 건사하는 일도 큰일이었는데 이때 요하네스 브람스가 절친한 친구로서 정신적으로나 아이를 돌보는 일에서 많은 도움을 줍니다. 어떻게 보면 로베르트가 죽고 나서 클라라 슈만의 커리어는 더 안정적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명분이 뚜렷해졌으니까요.
냉혹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사랑을 못받고 피아노를 잘 치는 것으로 칭찬받는 것만이 자기가 아는 사랑이었던 클라라에겐 다정다감한 집안에서 자란 로베르트의 사랑이 절대적이었을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지만, 로베르트는 당대의 여성차별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아이를 돌보거나 살림을 하는 일은 모두 여자의 일이라고 생각했고 어린 아내에게 그 모든 것을 요구했습니다. 클라라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심지어 작곡은 여자들이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의식도 가졌습니다. 본인이 원해서 그렇게 살았다지만 십대 시절 아홉살 많은 노총각을 사귀다가 스무살 되자마자 결혼한 어린 여성의 인생에 이건 가스라이팅이라고 분노까지는 안 하더라도 애잔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시절은 원래 그랬다고 하기에는 <모차르트는 여성이었다>(알리에트 드 라뢰)에 나오는 파니 멘델스존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나인 파니는 펠릭스보다 먼저 음악을 배웠고 작곡을 했고 많은 것들을 동생에게 가르쳐주었지만 성장하면서 이제 음악은 취미 교양으로 하고 시집이나 가라는 아버지에 짓눌렸습니다. 처음엔 누나를 지지하던 동생도 자기 이름으로 대신 발표해준 누나의 가곡이 더 인기가 좋자 질투심으로 점점 멀어져 결국 아버지에게 동조해 여성의 의무를 다하라고 반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파니는 화가와 결혼했는데 그 남편은 매일 아침 아내의 책상 위에 빈 악보지 한장을 놓아두었습니다. 요즘 시절에도 보기 드문 그런 남편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사회의 강압과 아이 양육에 맥을 못 추다가 마흔?(인가 생각이 잘 안 나네요. 책이 어디 갔나 안 보여서..)이 다 되어서야 동료 음악가의 지지를 받고서 드디어 용기를 내어 본격적인 음악가로서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곧 심장문제로 병사합니다.
그 시절 여성 음악가의 안타까운 사연을 생각하면 화도 나고 요즘도 이 모양이지라는 생각에 답답해지고,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 사랑이라는 것도 뭐 그러냐 하고 뾰족한 마음이 일어나는데요, 그래서 한동안은 이 ‘못된’ 남자들의 작품을 사랑해야하는 것이냐, 하는 망설임과 혼란으로 고민했습니다. 뒷이야기들을 듣고 나면 처음의 감탄과 존경, 기쁨이 더 이상 우러나오지 않고 감동이 옅어지고 씁쓸해지는 현상이 일어나는거죠.
지금은 조금 다르게 봅니다. 우리가 아는 후일담이 생겨나기 전, 순수한 사랑과 희망, 잠재성으로 가득찬던 그 순간은 어쩌면 빛바래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 작품으로서 그 진실성은 살아남은 것이라고 위안합니다.
길게 보아서 깨지지도 않았는데 퇴색하지 않은 사랑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쉽게 냉소하고 손절하기엔 사랑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순간의, 한 시기의 진실이라도 진실이고 소중히하는게 맞는것 같습니다.
Fritz Wunderlich (독일, 1930-1966)
https://www.youtube.com/watch?v=p6zTlze74Sk&a
Barbara Bonney, Malcolm Martineau Dichterliebe
(Im wunderschönen Monat Mai 5:30~7:00)
https://www.youtube.com/watch?v=fLwUy9pCh5U&t=32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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