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useppe Verdi(1813~1902)
Francesco Maria Piave(1810~1876)
Gualtier Maldè, nome di lui sia amato,
Ti scolpisci nel cor innamorato!
괄티에르 말데, 사랑하는 그의 이름이여,
내 마음 속에 새겨져 나를 매혹하는!
Caro nome che il mio cor
festi primo palpitar
Le delizie dell'amor
mi dei sempre rammentar!
그리운 그 이름이여,
내 마음에 최초의 두근거림을 일으킨,
사랑의 기쁨을
언제나 내게 기억나게 하겠지!
Col pensier il mio desir
a te sempre volerà,
E fin l'ultimo sospir,
caro nome, tuo sarà.
상념과 함께 나의 욕망은
당신을 향해 언제나 날아가요,
그리고 내가 최후에 내뱉는 숨도,
그리운 그 이름, 바로 그대가 될거에요.
라미레미 번역
드디어 오페라 아리아 시작입니다. 첫곡은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 중 질다의 아리아 Caro Nome입니다.
제가 맨처음 클래식에 입문하게 된 게 베르디였죠. 초등학교때 보게된 <6부작 베르디> 덕에 베르디 오페라에 빠졌는데, 몇년 후 키메라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됨에 따라 키메라의 오페라 아리아 메들리를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하게 되는… 기염을 토했던 것입니다.
당시의 키메라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요즘의 사라 브라이트만이나 안드레아 보첼리 같은 분들과 같은 급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야말로 ‘팝페라’라는 장르 자체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역사 그 자체인 분입니다. 한국 출신으로 원래는 자그마하고 동양적인 외모인데 그때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런거 없죠) 정말 획기적인 메이크업으로 ‘키메라’라고 하는, 오페라와 현대의 락음악을 접목한 과감한 컨셉에 걸맞는 찬란한 모습으로 질풍과도 같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레바논 출신 부호와 결혼한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당시 안타깝게도 어린 딸이 유괴되는 사건을 겪은 후 딸의 곁을 지키기 위해 은퇴를 했습니다. 만약 그 사건이 없었고 키메라가 계속 활동을 했다면 지금의 팝페라 지형은 전혀 다르게 되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때 키메라의 그 노래들 중 가장 강력했던 것은 밤의 여왕의 아리아였고 이후 전국민이 아는 오페라 아리아의 대표곡이 되었습니다만, 메들리를 시작하는 곡은 Caro Nome였고, 제 마음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오페라 <리골레토>는 이탈리아의 만토바 공작의 어릿광대인 주인공 리골레토를 중심으로 극이 진행됩니다. 질다는 리골레토가 속세의 어리석고 천박한 무리와는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애지중지 키운 딸입니다. 그러나 청춘의 꿈이 피어나는 질다는 엉뚱하게도 아버지가 가장 피하게 하고 싶었던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은 오늘도 또 하나의 희생양으로 몬테로네 백작의 딸을 농락하고, 비통해하는 몬테로네 백작을 리골레토는 독설로 비아냥거리고, 오늘도 또 하나의 적이 늘어납니다. 또 다른 여자를 찾아나선 만토바 공작은 질다를 유혹하기 위해 자신이 ‘괄티에르 말데’라는 이름의 가난한 학생이라고 속입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사랑에 빠진 질다는 바로 이 노래, ‘그리운 그 이름’을 부르게 되지요.
리골레토를 증오하는 무리들이 뭔가 꼬투리를 잡기 위해 리골레토를 미행하다가 질다를 발견하고는 리골레토의 정부라고 착각하고, 복수를 위해 질다를 유괴해 만토바 공작에게 갖다 바칩니다. 질다는 자기가 사랑한 고학생이 사실 만토바 공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과연 좋아했을까요? 아무튼 바친 것인지 빼앗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밤 이후에도 질다는 만토바 공작을 사랑합니다.
복수심으로 불타오르는 리골레토는 딸과 함께 베로나로 떠날 준비를 하며 동시에 살인청부업자에게 만토바 공작의 살해를 청부합니다. 만토바 공작을 누구인 줄도 모르고 반한 업자의 여동생은 오빠에게 이 잘 생긴 남자를 죽이지 말자고 애원하고, 둘은 결국 다른 사람을 죽이자고 합의를 합니다. 베로나로 가려고 남장을 하고 있던 질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대신 자신을 희생하고, 복수의 기쁨에 차 시체가 든 푸대자루를 넘겨받은 리골레토는 죽임당한 사람이 만토바 공작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절망합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왜 이 놈의 서양남자들이 만든 소설이니 극이니 하는 것들은 죄다 여주인공들이 순수하고 세상 모르고 사랑밖에 난 몰라인 걸까, 여자들을 다 머저리로 만들고 싶은걸까 대단히 불만이 많았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에는 일말의 진정성이 있습니다.
순수 그 자체인 질다는 리골레토의 또 다른 자아인 것입니다. 딸을 ‘이상화된 자기’로 키우는 리골레토의 부모 됨됨이를 비판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리골레토라는 인물, 광대라는 존재를 알아야 합니다.
리골레토는 어릿광대, 굽은 등의 곱추, 어른이지만 어린아이처럼 작고 그래서 힘없는 존재, '추하고 일그러진' 인간입니다. 궁정의 모든 '잘나신' 인간들이 자신의 모든 추함과 비굴함과 어리석음과 광폭함을, 뚜껑 닫고 넣어두어야 하는 모든 어둠들을 밀어넣고 '투사'하는 존재입니다. 가장 못나고 어리석은 바보이므로 누구에게나 경멸을 받아도 좋은 존재이지만, 대신 바보이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해도 모가지가 잘릴 걱정은 없습니다. 가장 비천한 몸이지만, 왕의 비호를 받으면서 높으신 귀족나리들을 얼마든지 비아냥거려도 좋은 특이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리골레토는 굉장히 머리가 좋고 똑똑하지만, 세상 없는 바보 같은 척을 합니다. 누구보다도 강한 자존심을 갖고 있지만 살기 위해서, 그리고 궁정 안에서 제 자리를 갖기 위해서 자신을 낮추고 우스갯거리로 만들지만 대신 제 비위나 왕의 심기를 거스르는 작자들을 똑같이 구렁에 쳐박는 일에 은근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일에 회의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왜냐면 자신의 딸만큼은 철저하게 세상에서 분리된 채로 착하고 순수한 존재로 정성껏 키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조심을 했건만 자신이 만든 적들 때문에 딸을 유괴당했고, 자기로서는 마땅한 복수를 하려고 한 것인데 엉뚱하게도 딸이 자기의 원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합니다. 리골레토로서는 자기의 존재에 대해 깊이 회의를 느낄 수밖에 없는, 자신의 노력과 꿈에 대해 근본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마음 속에서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태인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어릿광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고통에서 빗겨나 있습니다. 그를 연민하며 어리석게 목숨을 던진 어린 처녀를 연민합니다. 하지만 어릿광대인 그가 보여주는 것은 사실 그가 거둬들인 모든 보통사람들의 어둠과 불안과 어리석음, 희망과 고통입니다. 그의 역할은 원래가 사람들을 비추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이 이야기는 빅토르 위고의 희곡 <왕은 즐긴다>가 원작이며 검열 때문에 왕을 공작으로 프랑스를 이탈리아로 바꾸고 많은 장면을 삭제해 원작의 사회비판적인 기조와 멀어졌다는 평이 있습니다. (왕이 공작이 된 것은 사실 그렇게 엄청난 이탈은 아닙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하나의 국민국가가 아니었고 누구누구 공작령이라고 하면 공작이 그 지역의 행정 치안 사법 3권을 장악하는 왕과 같은 지배자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권력자들을 비판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주는 극의 가치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리골레토는 자신이 딸을 위해 세상의 모든 위험과 불안요소들을 제거하고 세상과 분리하여 보호할 수 있다고 착각했고, 아름답게 자라나는 딸을 보며 자신의 모든 희망과 기쁨을 불어넣었지만, 그런 기획 즉 자신의 비정하고 독설에 찬 삶과 딸이라는 순수와 기쁨으로 찬 희망을 분리한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질다는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세상사의 때가 묻지 않은 어린 처녀로 그 나이때 자연스레 꿈꾸게 되는 사랑과 희망에 따라 사랑에 빠지고, 자기의 사랑이 가리키는 길을 걸어갔을 뿐입니다. 리골레토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불쌍한 희생양이지만, 후회할 것도 고칠 것도 없는 완전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질다는 잘못한게 없다, 완전하다라고 주장한다면 여성들을 사랑밖에 난 몰라라 하는 어리석은 남성지배구조의 피착취자로 재생산하는 문화에 동조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은 결혼생활을 20년 가까이 하면서 온갖 고난과 희망고문의 달인?이 되어버린 지금의 결론은 인간 사회에 좋은 로맨스라는 것과 나쁜 로맨스라는 것이 없고, 로맨스는 원래가 여성의 굴레라는 것입니다. 모든 로맨틱한 것을 좋아하며 불타오르는 저의 취향을 부정하는 결론입니다만, 그렇습니다. 맨처음 사랑을 발명한 측은 아마도 여성일텐데도, 그러네요.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소프라노들이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만 제가 첫번째로 꼽는 건 조수미님의 2000년 일본 공연입니다. 정말이지 신명나게가 아니라 신 자체로 군림하시는 명연입니다. 이 드레스 입고 찍은 영상이 다 명연입니다. 이 날 도대체 무엇을 드신 것일지…
Sumi Jo Caro Nome
https://www.youtube.com/watch?v=zPpda21XprA
오페라 공연 중에서는 파트리시아 프티봉의 연주가 정말 훌륭합니다. 나탈리 드세도 그렇고 파트리시아 프띠봉도 그렇고 프랑스 오페라 가수들은 왜 이렇게 연기를 잘 하시는건지!
Patricia Petibon Caro nome RIGOLETTO
https://www.youtube.com/watch?v=faGc2GvJr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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