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ert Schumann(독일, 1810~1856)
Heinlich Heine(독일, 1797~1856)
Ich will meine Seele tauchen
In den Kelch der Lilie hinein;
Die Lilie soll klingend hauchen
Ein Lied von der Liebsten mein.
내 영혼을 잠기게 하겠어요,
백합의 잔 속으로 깊이.
백합은 울리며 내뱉겠죠,
내 연인을 위한 노래를.
Das Lied soll schauern und beben,
Wie der Kuss von ihrem Mund,
Den sie mir einst gegeben
In wunderbar süsser Stund’.
그 노래는 떨리며 소스라치겠죠,
그녀의 입술에 하는 키스처럼.
언젠가 그녀가 나에게 허락한
놀랍도록 달콤한 순간처럼.
라미레미 번역
로베르트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 중 5번째 곡 Ich will meine Seele tauchen입니다. <시인의 사랑>은 로베르트 슈만이 하이네의 <서정적 간주곡>에서 16편의 시를 뽑아서 1840년 클라라 비크와 결혼하기 직전에 작곡한 가곡집입니다.
오랫동안 클라라의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을 못 하다가 드디어 결혼하게 된 1840년에 그는 무려 200곡이 넘는 가곡들을 지었고, 그래서 1840년을 슈만의 ‘가곡의 해’라고 부릅니다.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진 기쁨으로 가득찬 슈만의 창조력이 흘러넘쳤던 거지요. 그래서인지 슈만의 가곡들은 참 아름답고 그윽합니다.
하지만 <클라라 슈만 평전>(낸시 라이히)을 읽고 난 후 저의 생각은, 클라라 슈만이 끊임없이 아이를 임신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을 돌보는 ‘여성의 의무’에 얽매이지 않았더라면, 또한 ‘여성은 남성의 지도 아래 있어야 하며 지적으로 열등하고, 남성만큼 작곡을 잘 할 수 없다’ 등등의 고정관념에 스스로가 사로잡혀있지 않았더라면, 클라라 슈만 역시 동료 음악가였던 쇼팽과 리스트 못지 않은 피아니스트이자 동시에 위대한 작곡가로 더 많은 훌륭한 작품들과 위대한 이름을 남기지 않았을까, 그 결혼은 클라라 비크에게는 과연 축복이였을까 하는 의문, 그리고 아쉬움입니다.
현존하는 클라라 슈만의 곡들을 들어보면 로베르트 슈만과 비슷하면서도 더없이 부드러우며 복잡하고 섬세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몇 곡 못 들어본 저의 인상 비평이지만, 왠지 확 치고 나와야 되는데 못 하는 것 같다… 내지는 그 끝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망설임’이 있습니다. 작곡가로서의 프라이드를 갖지 못 했던, 언제나 기준이 자신의 극히 훌륭한 작곡가 남편에 있었던 때문이었을까요…
차라리 만약 클라라가 로베르트가 아니라 동년배의 젊고 잘 생기고 집안도 괜찮은 남자와 사랑에 빠졌었더라면, 아버지의 불같은 반대(그 늙고 집안도 별볼일 없는 노총각한테 내 딸을 주다니! 이제 창창한 커리어가 시작인데 그걸 다 말아먹으라고!)도 없고 결혼 후에도 아버지의 영향력이 계속 남아서 연주가로서의 커리어만이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계속 발전해야겠다는 동력이 살아남아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뭐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클라라 비크와 결혼한 것은 로베르트 슈만에게는 다시 없는 행운이었을것 같습니다. 노총각인 자기보다 훨씬 젊고 아름답고 순수하며 예술적 감성으로 충만하며 더없이 의견이 잘 통하는 당대 최고의 젊은 피아노 연주가인 아내라니!
그가 젊어서 사창가만 안 갔어도, 그렇게 신체적 정신적 문제로 고통받다가(로베르트 슈만의 당시 증상은 전형적인 제3기 매독 증상이라고 하네요.) 한창 나이에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스스로 정신병원으로 걸어들어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텐데요. 그 시절 음악가들은 정말 그게 아쉬워요. 슈베르트도 그렇고. 그런데 슈베르트를 사창가로 데려간 쇼버는 밤의 향략 문화를 만끽하고도 본인은 80세 이상을 장수하면서 잘 살았다고 하는데요…
행운과 불운이라는 것이 다른 것보다 인간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윤리성을 지킨다는 것도, 생각보다 (못된 놈들만 성공하는 것 같은 세상에서) 나를 불운에서 지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저는 로베르트 슈만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아쉬움이 들어요. 그가 정신병이 발병하지 않고 무사히 잘 넘어갔다면, 클라라와 함께 서로 상생하는 음악가 부부로 행복하게 잘 살았을 수도 있을텐데요.
혹은 남편의 질투와 방해(육아 가사 협조 없음, 애들이 걱정되니 이번엔 집에 있는게 어때?)로 클라라 슈만은 연주자 커리어마저 잃고 점점 가정주부화되고, 다 닳아버린 마음으로 불행 끝에 남편과의 사랑도 어그러졌을 지도 모릅니다. <클라라 슈만 평전>을 보면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처음 한두번은 커다랗고 순수한 기쁨이었지만, 넷째, 다섯째로 갈수록 점점 더 의무와 책임에 짓눌리는 고통을 토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클라라 슈만은 여성의 의무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았지만, 어떻게든 자기를 지키기 위해, 그러나 언제나 (남편이 죽은 지금) 가정경제를 위해서라는 명목을 달아 연주가 커리어와 자기 음악을 지키고, 아이들 양육은 가정부와 기숙사에 많이 의존했습니다.
왠지 요즘 여성들 사는 것과 많이 비슷합니다. 왜 클라라 슈만 드라마 안 나오나, 저 무척 기다리고 있습니다. 완전 인기있을 것 같습니다. 슈만 부부의 사랑도, 요하네스 브람스와의 관계도 무척 흥미진진할텐데.
그렇다고 로베르트와 클라라의 사랑을 평가절하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들은 분명 아름다운 사랑을 했고 아름다운 시절을 가졌고, 그래서 아름다운 음악들을 남겼습니다. 언젠가 끝이 난다 해도, 언젠가 변질된다 해도, 사랑은 사랑이지요.
사랑이 그런거지요. 시작은 하얗고 깨끗하고 아름답지만, 결국은 질퍽거리는 흙먼지 속에 끝나는 첫눈처럼, 자기만의 일생이 있습니다. 십년이 넘어도 이십년이 넘어도 두 사람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 모두의 노력과 우주가 퍼주는 끝없는 행운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Dietrich Fischer-Dieskau
https://www.youtube.com/watch?v=649de8dvqY4&a
Barbara Bonney's Recital: Schumann and Sibelius's Dichterliebe (with Malcolm Martineau)
(Ich will meine Seele tauchen 10:24~11:24)
https://www.youtube.com/watch?v=fLwUy9pCh5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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