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김연아 선수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어떻게 동양인으로서 피겨스케이팅에서 성공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김연아 선수가 한 답변이 아주 흥미롭다. 그것은 피겨스케이팅이 기술이자 예술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그렇다. 완전히 예술만이었으면 '주관적 기준'에 따라 동양인 선수는 쉽게 밀려났을 것이다. 일본 같은 피겨대국, '명예서구인' 같은 선진국(어쩌면 ‘구제국주의 국가’;)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점프는, 3번과 4번이 엄연히 다르다. 깨끗한 착지와 어정쩡한 착지는 많이 다르다.
그런데, 소프라노도 그렇다. 성악도 기술이자 예술이다. 예술로 분류가 되긴 하지만 경연대회를 하면 피겨스케이팅 못지 않게 정확하게 우열을 가릴 수 있다.(물론 이에 대해선 이견이 있겠지만 김연아 선수가 소치에서 금메달을 못 따는 것을 보면 피겨스케이팅이 클래식보다 판정시스템이 확실히 더 객관적이라고 자신할 수만은 없을것 같다.) 마냥 예술이기만 한 것은 아니고 마냥 주관적인 판단의 대상인 것은 아니다. 테크닉도 테크닉이고, 어렵고 어려운 레파토리들이 이미 축적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고음은 하는 것과 안 하는 것(못 하는 것)으로 그냥 구분이 되어버린다. 피겨 스케이팅처럼 '깨끗한 착지"도 중요하다.
요즘은 극적인 재미를 위해 외모도 많이 보고 연기력도 많이 보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대미를 장식하는 고음을 안 내어주고 그냥 넘어가면... 많이 허전하다. 마치 점프가 없는 피겨는 더이상 피겨가 아닌 것처럼, 피날레의 고음이 없는 오페라 아리아라는 것은... 피겨도 아니고 아이스댄싱도 아닌 어정쩡한 무엇이 되어버리기 마련이다.
가곡은 좀 다르다. 고음이 없어도 되고 오로지 예술성으로만 승부한다. 아이스댄싱과 유사하다. 하지만 피겨엔 점프가 있어야 하고 오페라엔 고음이 있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고음을 내어주는,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소프라노가 오페라의 꽃이 된다.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점프의 최전선인 발레리노도 있다.
→ 세르게이 폴루닌: 높이 뛰어오를 때, 나는 느낀다 https://on-wings-of-song.tistory.com/106
김연아 선수의 벤쿠버 올림픽과 소치 올림픽 경기 영상을 보면 둘 다 매우 뛰어나지만, 그 완벽함의 정도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젊음의 약동이 마구 느껴지는 벤쿠버를 취향에 따라서는 더 좋아할 수도 있고, 안무와 음악, 의상이 어우러지는 완성도에서는 벤쿠버의 007이 올킬이겠지만, 내가 보기에 소치의 경기는 인간인 피겨 스케이터가 도달할 수 있는 거의 완벽함의 상태를 보여주었다. 더 세밀해지고, 더 완벽한 몸놀림, 끊김이 없이 이어지는 원의 움직임이다.(김연아 선수와 같은 급(신급)의 선수는 하뉴 유즈루밖에 못 봤다. 재미있게도 둘 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의 제자다.)
평창 올림픽의 메드베데바 선수의 연기를 보면 김연아-소치의 완벽함을 많이 따라잡고 있음이 느껴졌는데, 거기에서 더 나아가 모든 것의 완벽을 이룰 수 있을 지는, 약간 어두운 전망이다. 점수체계가 좀 미비해서, 자기토바 같은, 세밀하지는 못 하지만 점프를 더 잘 하는 선수에게 유리하며, 자꾸 그쪽으로 선수들을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선수양성 시스템이 어린 선수들을 빨리 키워 메달쓸어담기에 급급하고 선수들을 장기적으로 키우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도 문제다.(역시나, 4년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부상과 코로나 등의 악재로 후배들에게 밀려나 버려서 아예 나오지도 못하고 은퇴를 해버렸다ㅜ)
그런데 소프라노도 그렇다. 젊은 소프라노들은 목소리도 좋고 힘도 좋고 외모도 좋고 다 좋은데 완벽함이 아직 부족하다. 과연 지금의 오페라계가 한 소프라노가 완벽함을 추구하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인가? 오페라가 살아남기 위해, 극적인 재미를 위해 소리도 테크닉도 노래도 연기도 외모도 적당할 것만을 요구하는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완벽을 허용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나는 그것이 많이 아쉽다. 물론 극적인 재미 많이 중요하지만… 연기 잘 하면 진짜 재미있고 감동적이지만… 완벽함을 보고 싶다.
라미레미
2018
2014 소치 올림픽 프리 '아디오스 노니노’
https://www.youtube.com/watch?v=peX_eX06DN8&t=322s&a
2010 밴쿠버 올림픽 쇼트 제임스 본드 메들리
2014 소치 올림픽 쇼트 '어릿 광대를 보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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