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
Johann Andreas Schachtner(1731~1795)
Ruhe sanft, mein holdes Leben,
schlafe, bis dein Glück erwacht;
고이 쉬어라, 나의 아름다운 날들이여,
행운이 깨어날 때까지 잠들기를!
da, mein Bild will ich dir geben,
schau, wie freundlich es dir lacht:
자, 내 초상을 주노니
보아요, 얼마나 사랑스럽게 웃고 있는지.
Ihr süssen Träume, wiegt ihn ein,
und lasset seinem Wunsch am Ende
die wollustreichen Gegenstände
zu reifer Wirklichkeit gedeihn.
너희 달콤한 꿈들아, 그를 잠들게 하여
그의 소원들을 마침내 이루게 하라,
관능적인 기쁨에 찬 대상들이
현실 속에 나타나도록.
라미레미 번역
모차르트의 미완성 오페라 <자이데> 중 가장 유명한 아리아 ‘고이 쉬어라, 나의 아름다운 날들이여’ (Ruhe sanft, mein holdes Leben)입니다.
자이데는 유럽의 귀족 출신으로 해적에게 잡혀와 술탄의 후궁에 억류되어 있는 신세입니다. 같은 노예인 고메츠와 사랑에 빠져 두 사람은 도피를 시도하고, 자이데를 총애하는 술탄 솔리만은 분노의 아리아를 부르고, 끝까지 몰린 자이데는 맞짱을 뜨는 ‘호랑이여’를 부릅니다.
안타깝게도 모차르트가 작곡을 중단해서 그 뒷부분이 어떻게 마무리될 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듣기로는 자이데와 고메츠를 도와주는 알라침이라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 덕분에 술탄의 분노를 잠재우는 해피엔딩이라는데 알고보니 자이데와 고메츠가 알라침의 잃어버린 자녀라던가… 해피엔딩이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이데>는 모차르트가 다른 오페라를 작곡하느라 손에서 놓고는 죽어버려서, 사후 아내가 필사본을 뒤져 다시 살려내어 1866년 모차르트 탄생 110주년에야 초연이 된 오페라입니다. 서곡과 막장이 없기 때문에 공연이 좀 어려운데, 그래서인지 디비디도 ‘전통적인’ 고풍스러운 버전이 없고 죄다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것들이네요. 모이차 에르트만의 2006년 잘츠부르크 공연을 2번 봤는데도 아직 뭔 얘긴지 다 파악이 안 되어 결국 포스팅을 위해 한번을 더 보고 나니 이제야 좀 대충 알거 같습니다.
흔히 mein holdes Leben을 ‘내 사랑’이라고 번역하는데, 오역입니다. 나의 소중한 삶, 혹은 아름다운 날들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Leben이 살다, 혹은 삶이거든요. 영어로 life입니다. 여주가 잠이 든 남주를 바라보며 부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보는거 같은데, 사실 두 사람은 아직 연인이 안 되었고, 여자가 남자가 마음에 들어 자기 초상화를 잠든 남자 곁에 놓고 떠나는, 썸의 시작 정도의 장면입니다.
해석상으로도 내 좋았던 아름다운 날들은 이미 가고, 술탄의 애첩이 되어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의 억류생활이 답답하고 힘들지만, 언젠가 여기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어 다시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굉장히 우울한 상황에 놓여 있는 한 여성의 한탄조의 노래로 해석하는 것이 상당히 말이 됩니다.
우울하고 답답한 상황에서 충동적으로 같은 기독교인 노예와 연애를 시도하는거죠. 술탄에게 걸리면 목이 달아날 지도 모르는데. 아마도 남자가 많이 잘 생겼었나 보네요. 비참한 노예생활을 하는 꼬질꼬질한 남자가 같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동질감을 일으켜 낙점된걸 보면.
저는 이 노래를 참 좋아합니다. 나의 소중한 삶이여, 다시 깨어날 때까지 고이 쉬어라, 다시 살아날 때까지 잘 버텨주라, 내 자신아, 하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뇌이던 날들에 이 노래를 들었기 때문일까요? 나이 차가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힘겹게 몸을 일으켜 이제 좀 일어서려고 하면 나를 다시 주저앉히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나의 두 술탄들이 나를 사랑해도, 내가 그들을 사랑해도 어찌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처음부터 하렘에 잡혀가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제발로 걸어들어가지 말았어야 할 일입니다. 그걸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네요.
깊고도 따듯한 위안을 엠마 커크비님의 목소리로 들었었습니다.
Mojca Erdmann “Ruhe sanft, mein holdes Leben”
https://www.youtube.com/watch?v=zptXYtud_GY&
아래 200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연은 모차르트의 자이데와 이스라엘의 작곡가 사야 체르노윈(Chaya Czernowin)이 작곡한 <아다마>를 한 장면씩 병행하여 이어붙인 실험적인 공연입니다. 자이데와 고마츠, 알라침, 졸리만이 한쌍이 되고 여자(Woman)와 남자(Man), 아버지(Father), 졸리만?이 다른 한쌍이 되어 같은 운명을 나누는듯? 합니다. 오케스트라도 둘입니다.
무대도 조금 기괴합니다. 걸리버의 거인국에 온듯한,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드는 큰 교실의 책상과 걸상에 머리가 매우 큰 교장선생님 같은 술탄 졸리만이 등장하는데요, 대사나 노래 할 때 외에는 늘 뒤집어쓰고 있는 거대한 머리는 말 그대로 졸리만의 비대한 자아를 표상하는듯 합니다. 돌멩이로 영역을 표시하며 땅따먹기라도 하나 싶은 괴상한 행동들을 하고, 여자들끼리, 남자들끼리 동조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자이데-아다마>에서 노래 외의 대사와 극진행은 <아다마>에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뭐랄까 <자이데>를 <아다마>가 통째로 삼켰는데 채 소화가 안 된 노래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
<아다마>의 뭔지 모르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는 두 남녀, 가까와지고 싶지만 어딘가에 묶여있는 그들입니다. 대사도 유려하게 이어지지 않고, 단발마의 비명 같기도 하고 분절된 감정의 조각 같은 파편들을 내뱉습니다. 그 무의미한 통증들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가 없는 이 관람행위가 고통이네요ㅜ MZ 세대의 빨리감기 문화를 비판했었는데 도저히 못 버틸 것만 같은…
Mozart / Czernowin - Zaide - Adama - Act 1 - Salzburg Festival 2006
https://www.youtube.com/watch?v=MehDNShPoI0&a
제가 확신하는데, 엠마 커크비님의 Ruhe sanft를 듣지 않고 천국에 갈 수는 없습니다.
Emma Kirkby Ruhe sanft, mein holdes Leben
Lucia Popp Ruhe sanft, mein holdes Leben
Dame Kiri Te Kanawa Ruhe sanft, mein holdes Leb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