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

절망에 빠져 흐느끼는 나이팅게일 Trostlos schluchzet Philomele <자이데> Zaide - Mozart 가사번역

by 라미레미 2023. 9. 16.

(Mojca Erdmann Trostlos schluchzet Philomele 30:18~36:00)

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
Johann Andreas Schachtner(1731~1795)
 
 
Trostlos schluchzet Philomele,
in dem Käfig eingeschränkt,
und beweint mit reger Kehle,
dass man ihre Freiheit kränkt.
 
절망에 빠져 흐느끼는 나이팅게일,
새장 속에 갇힌 채,
목놓아 애도하네,
그의 자유가 꺾여버린 것을.
 
 
Tag und Nacht mag sie nicht schlafen,
hüpfend sucht sie Raum zur Flucht.
Ach, wer könnte sie wohl strafen,
wenn sie findet, was sie sucht.
 
밤이나 낮이나, 자려고 않고,
뛰어오르며 도망칠 틈을 찾으려 하네.
아, 누가 그를 벌할 수 있을까,
자기가 찾던 것을 그가 찾아냈을 때.
 
 
라미레미
 
 
2막의 자이데의 아리아 Trostlos schluchzet Philomele(절망에 빠져 흐느끼는 나이팅게일)입니다.
 
1막의 끝에서 자이데와 고마츠가 알라침의 주도로 도망을 가고, 2막의 시작에서 술탄 졸리만은 자신을 사자에 비유하며 어마어마한 분노를 터뜨립니다. <자이데-아다마>에서는 거대한 4명의 큰 머리가 마치 분열된 졸리만의 자아들처럼 기묘한 구도를 이룹니다. 알고 보니 졸리만은 두 명이고 한 머리는 오스민이었습니다. 오스민은 알라침의 몰락이 자신의 기회라 여기고 기뻐합니다.
 
술탄에 대해서는 솔직히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분노를 부숴내는 졸리만의 고통을 들여다보게 되면 그게 단순히 내 뜻에 거스르는 노예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자신의 일부를 잃는 고통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즉 그는 자이데를 사랑했던 거죠.
 
아니 왜? 의문이 듭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을 한갓 노예로 두었나? 그렇게 취급하면서 여자가 너를 사랑할 거라고 기대했나? 사람 대접을 못 받고 갇혀 살면서 너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한 여자가 행복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거야? 그러니 다른 노예와 도망을 쳤지… 하는 당연한 의문입니다. 혹은, 왜 노예를 사랑하는가? 물건처럼 쓰고 버리는 것이 노예거늘… 노예를 욕망의 대상으로서만 이용하지 않고 사랑한 네가 잘못 아닌가? 하는 삐딱한 비난도 가능합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이 전통적으로 정식 부인을 두지 않고 하렘의 여인들을 거느리게 된 사정이 있으니, 관습을 어기고 술탄 혼자 자기가 사랑한 노예를 해방해 정식 부인을 만든다는 것도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졸리만의 원대로 모든 일이 돌아가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나를 사람 취급을 안 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도 정상적인 사람에겐 불가능한 일이고, 자기가 선택하지도 않은 남자에게 정절을 지키기 위해 다른 남자를 사랑하지 말라고 여자에게 요구한다는 것도 얼토당토 않은 일이니까요.
 
이렇게 심각한 고민을 하는 우리가 무색하게, 당시의 오페라나 회화, 책자 등은 유럽의 기독교인 남성들을 위한 성적 환타지의 일환으로서 하렘이니 술탄, 아름다운 노예들을 등장시켰을 뿐이고, 술탄은 사실 여성들만큼이나 철저하게 대상화된 존재일 뿐입니다. 평범한 유럽 남성으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권력과 쾌락을 누리지만 야만인보다 좀 나은, 거의 다를 바 없는 이교도, 의 우두머리. 여주와 남주에게 고난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NPC 같은 캐릭터.
 
그렇게 취급하면서 그 ‘기호같은 존재’(<호타루의 빛> 참조)인 술탄이 자신의 존재의 바닥까지 무너져내리는 고통과 분노를 보고 있자니 좀 많이 새로웠습니다. 역시 모차르트인가? 어쩌면 오페라의 존엄인가? 배우와 연출의 힘인가? 무너진 자신을 다시 세우는 것은 그러나 가장 폭악한 자아였습니다.
 
자이데와 고마츠, 알라침이 잡혀오고 졸리만은 자기는 좋은 사람일수도 나쁜 사람일수도 있다고 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분노를 쏟아내자 ‘죄인들’은 무서워 떱니다. <아다마>에서는 돌멩이로 고문-형벌당하는 장면이 많이 무섭습니다.

처음에 자이데는 중도주의입니다. 새장에 갇힌 나이팅게일을 빗대어 자기의 고통과 괴로움, 소망을 호소하려고 합니다. 이해를 받기를 원합니다. 다친 이들을 위로하려고 합니다. 희망을 가지려 합니다. 그러나 졸리만의 용서없는 분노 앞에 도리어 분노를 일으켜 호랑이여! 오직 발톱을 날카롭게 하라(Tiger! Wetze nur die Klauen)를 부르게 됩니다.
 
정말이지 모차르트는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운 멜로디를, 기가 막힌 하모니를, 천상의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싶은데 막상 가사를 들여다보면 참 많이 이반하는 내용들이 종종 있는, 무슨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 기법도 아니고 매우 아이러니한 매력이 넘칩니다. 이 노래도 가사를 모르고 들으면 이런 고통에 찬 일촉즉발의 장면에서 피어오른 노래라는 것이 참으로 상상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 어울린다’고 하기엔 너무나 기가 막힌 아름다움입니다.
 
 
(Mojca Erdmann Trostlos schluchzet Philomele 30:18~36:00)
Mozart / Czernowin - Zaide - Adama - Act 2 - (Salzburg Festival 2006)
https://www.youtube.com/watch?v=GmjdGTgK6sw&a
 
 
Emma Kirkby Trostlos schluchzet Philomele
 

 
 
Diana Damrau Zaide Zaltsburg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