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onín Dvořák(체코, 1841~1904)
Jaroslav Kvapil(체코, 1868~1950)
Měsíčku na nebi hlubokém
Světlo tvé daleko vidí,
Po světě bloudíš širokém,
Díváš se v příbytky lidí.
달님은 저 하늘 높이 떠서
아득히 멀리 비추니
세상을 널리 다니니
사람들 사는 곳도 알테니
Měsíčku, postůj chvíli
Řekni mi, kde je můj milý
달님 잠시만 기다려주
말해주오 어디에 내 님 계신지
Řekni mu, stříbrný měsíčku,
mé že jej objímá rámě,
aby si alespoň chviličku
vzpomenul ve snění na mě.
말해주오 님에게, 은빛 달님
내 팔로 안아주었다고
꿈 속에서라도 잠시
기억하기를 바라니
Zasviť mu do daleka,
řekni mu, řekni mu, kdo tu naň čeká!
멀리서 그를 비추어주
님께 말해주오 누가 기다리는지
O mne-li duše lidská sní,
ať se tou vzpomínkou vzbudí!
Měsíčku, nezhasni, nezhasni!
내 님이 나를 꿈꾼다면
기억이 그를 깨우리니
달님, 기다려주! 기다려!
달님이여, 기다려주!
라미레미 번역
어젯밤 달 보며 소원 빌으셨나요?
드보르작의 오페라 <루살카> 중의 루살카의 아리아 '달님은 저 하늘 높이 떠서'(Měsíčku na nebi hlubokém)입니다. 흔히 달에게 부치는 노래(Song to the moon), 혹은 달의 노래라고 합니다.
제가 아스믹 그레고리안이 부르는걸 듣고 너무 좋아서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체코어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노래를 부르게 된 후, 마침 국립오페라단에서 <루살카>를 공연하기에 얼른 갔지요. 그래서 2016년 <루살카> 한국 초연을 보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보통 줄거리를 체코판 인어공주로 이해하면 쉽지만 좀 많이 다르긴 합니다. 3막으로 이루어졌는데 1막은 루살카가 사는 숲 속 호수, 2막은 왕자가 사는 왕궁, 3막은 다시 숲 속 호수입니다. 1막에서 루살카가 가끔 숲속 호수에 오는 왕자에게 반해서 달님에게 하소연을 하다가 마녀 예지바바를 찾아가 인간이 되는 약을 받고 대신 목소리를 내어주고, 만약 왕자와의 사랑이 안 이루어지면 심연 속의 괴물이 되어버리는 저주가 걸린 계약을 합니다.
2막에서는 왕자가 루살카를 보고 반해서 결혼을 서두르는데 루살카의 ‘차가운 태도’에 좌절한 왕자가 결혼식 손님으로 온 외국 공주에게 빠져서 루살카를 저버리고, 루살카는 좌절 속에 물러나죠. 3막은 그후의 몇가지 이야기들입니다. 사랑의 상실에 고통받던 왕자가 결국 루살카를 찾아와 저주의 키스를 받고 죽습니다.
참 이해가 안 되는 왕자님이죠? 저도 디비디 볼 때만 해도 그랬는데, 직접 오페라를 보니 이해가 되는 것이 많습니다. 루살카는 남자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인간계로 건너왔는데, 이 남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이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여인에게 빠져들지만, 한편으로는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어서 답답해합니다. 남자가 사랑을 노래하면, 여자가 응답을 해줘야 하는데, 이 여자는 말을 못 하니, 나를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한데 나의 애정표현을 거절할 때는 정말 나를 좋아하는 것은 맞는 지가 헷갈리는 겁니다.
게다가 정말이지 재미있는것이, 무엇보다도 오페라인데, 여주인공이 노래를 못 하게 되는 설정이면 도대체 어떻게 전개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보러 가기 전엔 참으로 답이 안 나올 것 같은 줄거리였는데, 어 이 여자가 말을 못 하는 상황 자체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과 절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 참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나를 왜 거절하느냐고 따지는 왕자의 노래에 여주인공이 아무런 대꾸를 못 하고 있는데 끼어든 외국 공주의 대거리도 진짜, 말이 되는게 남자를 유혹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확 잡아채가는데 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 극에선 '나쁜 년' 역으로 나오는 셈이지만 참으로 설득력 있었고(이 나라 왕자비가 당연히 내 자리인 줄 았았는데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를 신원미상의 여자를 갖다놓다니! 일단 이노무 왕자를 유혹했으니 복수다, 뻥!) 욕망의 노예가 된 남자를 사뿐히 지려밟아주시는 까만 롱부츠와 가죽바지도 참 잘 어울리시고.^^ 그리고 물론 노래도 정말 잘 했습니다. 이런 대단한 캐릭터가 왜 자기 이름도 없이 그냥 ‘외국공주’인건지, 2막에만 나오는 서브?캐릭터라지만 내가 대신 억울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무대 가운데에서 (성적) 긴장감을 잡아주는 무용수들의 위용이 참으로 후덜덜한 것이, 솔직한 얘기로 2막이 끝나고 나자 내 입에서는 ‘진짜 너무하다, 이렇게까지 죽여줘도 돠는건가!’(극, 연출, 음악 모두 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다. 그냥 관객들 시선 잡아끌려고 늘어놓은 육체가 아니라, 물론 시선은 확실히 잡아주지만, 왕자가 사는 현실의 쾌락 세계와 루살카의 꿈이 머물던 순수한 사랑의 세계가 어떻게 어긋나고 어떻게 비극으로 치닫는지를 보여주는 전개과정에서 충실하게 설득력을 공급해 줍니다. 조금 과하게 야한 것 같긴 했지만, 딱 하나만 빼고는 그래도 대체로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무대 위를 어슬렁거리던 두 명의 살색 수용복 미녀는 아마도 나이트 클럽을 아마도 연상하게 의도했을 것인데, 영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 외에는 쾌락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이 맞부딪히는 극의 연출이 참으로 그럴싸했습니다. 이 극이 아주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지금도 수많은 여성들이 맞부딪히고 있는 사랑과 연애의 통과 의례, 혹은 혼란과 고통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정말 사랑이라는게 상대를 향한 순수한 애정과 헌신이 본령인 건지, 불타오르는 육체의 욕망이 진짜인 건지에 대해서는 요즘 나도 참 말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애정이 보답받지 못 한다는 생각에 루살카에게 반감을 갖는 왕자의 심정도, 너무나 그를 사랑해서 자기를 버리고 인간계로 오긴 왔는데 인간의 사랑이라는, 그 뜨겁고 징그럽고 무서운 무엇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인 루살카의 심정도 너무나 이해가 가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운명은 비극으로 치달아버렸습니다. (현명할 수밖에 없는) 제3자인 내가 보기에는 그 둘에게는 시간과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했던 것인데요, 그들에게는 시간도 너무 없고(사귄지 일주일만에 결혼.) 커뮤니케이션이 참으로(말을 못 하는 신원미상의 여인ㅜ) 어려웠던 것이죠.
3막은 좀 지루한 편이었지만, 여기에서도 '순결한' 자매들의 세계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이쪽에도 저쪽에도(욕망의 세계에도 안전한 가족의 세계에도) 속하지 못 하는 루살카의 고통이 오늘날의 여성들에게도 어떤 울림을 가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간계와 자연계를 대비시키는 연출 의도 운운 하시던데 그건 그렇게까지 와닿지 않았고, 성장소설쪽의 느낌이 좀더 왔습니다.
재미있게도 여주가 죽으면 비극인데, 여주가 아닌 남주가 죽으면 성장소설이 되는군요. 맨마지막의 마녀와 함께 돌아서 가는 여주의 모습도 거기에 한표를 더해줍니다. 자신을 전부 내던지는 사랑을 해서 고통과 절망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사람은 성장하고, 삶은 계속된다. 자매들에게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니 자매가 아니라 마녀라도!
아무튼 제가 본 <루살카>는 무척 감동적으로 재미있었고, 출연진(이윤아 소프라노, 김동원 테너, 외국공주 정주희 그리고 다른 출연진들) 모두 아주 훌륭했습다. 오케스트라도 훌륭하고 흠잡을 데 없는 연주였고 <루살카> 하면 빠질 수 없는 하프 소리도 매력적이고 좋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달의 노래도 훌륭했습니다. 노래는 당연히 훌륭했고 무용수들이 공중에 떠있는 모습이 마치 물 속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정말 훌륭한 연출이었습니다. 딱 한 가지, 달의 노래 끝부분의 휘몰아치는 부분에 무용수들이 같이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퇴장 타이밍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제가 이 노래 때문에 체코어를 독학했는데, 참 많이 낯설고 힘들었습니다. 성악을 공부하려니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서유럽어를 많이 했는데도 슬라브계다 보니 그쪽이랑 많이 다르더라구요. 그런데 나중에 러시아어를 하고 보니 체코어는 굉장히 친절한 편이었습니다. 최소한 알파벳은 서유럽어들과 거의 일치하니까요.
제가 이 노래가 너무 좋다보니 아예 한국어로 부를 수 있게 번역했습니다.
아스믹 그레고리안의 노래를 듣고 너무 좋아서 버닝하게 되었는데, 제가 유튜브에서 처음 본 영상은 아쉽게도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무슨 물의 요정이 아니라 요괴 같은 가죽슈트에 롱부츠를 신은 모습이었는데 슈퍼 모델 뺨치는 그레고리안의 미모로 다 커버하고서 정말 물의 정령이 된 것 같은 엄청난 비주얼이었습니다. 물론 노래도 엄청 잘 하시고… 아래의 발레리나 버전도 극이 상당히 괜찮습니다. 현대적 연출이 섞여있어서 호불호가 갈린다는데 그레고리안은 무조건 100점입니다.
보통은 그레고리안처럼 좀 무거운 목소리의 소프라노가 부르지만 루시아 포프 같은 꾀꼬리과의 연주도 정말 훌륭합니다. 그런데 안나 네트렙코의 노래도 의외로 좋습니다. 역시 이 노래는 슬라브권 소프라노가 불러야 된다는! 체코 소프라노가 부른 마지막 영상 압권입니다.
Asmik Grigorian(리투아니아, 1981~ )
https://www.youtube.com/watch?v=2UzDbP7_8TI&a
국립오페라단 루살카 2016 하이라이트
Anna Netrebko (러시아 , 1971~ )
Lucia Popp(슬로바키아, 1939~1993)
아래 영상은 51세의 얼굴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엄청난 분의 엄청난 연주입니다. 실은 첨에 봤을 때는 설마 배우랑 가수랑 따로 가는건가? 생각도 잠시 했지만 디비디 사서 보니 가수 본인 맞으신… 믿을 수 없다 생각했지만 최근 김혜수 53세 동안을 보니 믿을 수밖에 없다 싶네요.(그런 분들이 계시네요…)
Milada Subrtova (체코, 1924~ 2011) 체코 1975